<< Ⅰ. 고구려 >>
1. 건국
- 부여에서 온 주몽이 졸본 지역에 자리 잡고 고구려 건국했다.
- 부여는 5세기 말 문자(명)왕 때 고구려에 완전히 병합되었다.
2. 성장
1) 유리왕
압록강 중류의 국내성으로 수도를 옮긴 후 세력을 확대했다.

2) 태조왕(1C 후반)
- 옥저 정복하고, 중국 한에 맞서 요동 진출했다.
- 중앙 집권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3) 고국천왕
- 왕위의 부자 상속 확립했다.
- 수도를 방위별로 나눈 행정 구역을 설치했다.
→ 5 부족에서 동, 서, 남, 북, 중으로 바뀌었다.
- 진대법을 실시했다. (봄에 곡식을 빌려주었다 가을에 갚게 하는 빈민 구제 제도)
4) 미천왕
- 대동강 이남 지역을 확보했다.
- 요동 지역으로 세력 확대했다.
3. 위기와 체제 정비
1) 위기
- 4세기 중엽 고국원왕 때, 중국 전연의 침입으로 국내성이 함락됐다. (이후 고구려는 백제를 공격한다.)
- 백제 근초고왕의 공격으로 고국원왕이 전사했다. (당시 백제의 전성기)
2) 체제 정비
소수림왕 때, 불교 수용, 태학 설립, 율령 반포한다.
4. 전성기
1) 광개토 대왕
- 영토 확장을 확장한다.
- 남쪽으로 백제 공격해 한강 이북을 차지한다.
신라에 침입한 왜를 물리친다.(400)
- 북쪽으로 후연(선비족)을 공격해 요동 지역을 확보한다. 부여와 숙신(말갈)을 정복한다. → 만주 지역 대부분 차지
- 독자적 연호(영락)를 사용했다.
이는 중국과 대등한 국가라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2) 장수왕
- 남진 정책을 펼쳐 평양으로 천도(427),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시켰다.(475)
- 외교 정책으로 중국의 남북조와 교류했다.
→ 실리를 추구했다.

<< Ⅱ. 백제 >>
1. 건국
고구려에서 온 온조 세력이 한강 유역 토착민과 연합하여 위례성에 건국했다.
2. 성장과 위기
마한 소국 가운데 하나로 출발하여 여러 소국을 아우르며 성장했다.
1) 고이왕
- 중앙 집권적 고대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다.
- 목지국을 병합하여 한반도 중부 지역을 차지해 영토 확장을 한다.
→ 목지국 : 마한 소국 중 하나, 충청남도에 위치해있다.
- 좌평 제도와 관등을 마련하고 관리의 복색을 제정(공복제), 법령을 제정해 제도 정비를 했다.
** 좌평 제도 **
정사암 회의에서 좌평 선출을 비롯한 국가의 중요한 일을 결정했다.
2) 근초고왕(4세기 후반)
- 왕위 부자 상속으로 바꿔 왕권을 강화했다.
- 마한 전 지역을 정복하여 전라도 지역을 차지했다.
- 고구려의 평양성을 공격했다.
- 중국 동진 및 왜와 외교 관계를 맺었다.

3) 침류왕
불교를 수용했다.
4) 위기
- 아신왕 때, 광개토 대왕의 공격으로 한강 이북을 빼앗겼다.
- 개로왕 때, 장수왕 공격으로 한강 유역 빼앗겼다.
→ 고국원왕의 죽음에 대한 복수
- 문주왕 때 웅진(공주)으로 천도했다.
3. 중흥을 위한 노력
1) 동성왕(479~501)
- 귀족 세력을 누르고 왕권 강화 위해 노력했다.
- 나제 동맹을 강화했다.
2) 무령왕(501~523)
- 지방의 중요 지역인 22 담로에 왕족을 파견했다.
- 중국 남조의 양과 국교를 맺고 교류했다.
3) 성왕(523~554)
- 사비(부여)로 수도 옮기고, 나라 이름을 일시적으로 '남부여'로 고쳤다.
- 중앙에 22개의 실무 관청을 두고 통치 제도를 정비했다.
- 행정 구역을 정비하여 5부(중앙)와 5방(지방)을 설치했다.
- 신라와 힘을 합쳐 한강 유역을 회복했다.
→ 진흥왕 배신으로 한강 유역을 빼앗겼다.
→ 관산성 전투에서 성왕이 전사했다.
→ 나제 동맹이 결렬됐다.

<< Ⅲ. 신라 >>
1. 건국
진한 여러 나라 중 하나인 사로국에서 출발했다. → 박혁거세를 왕으로 추대했다.
2. 성장
1) 내물왕(356~402)
- 중앙 집권 국가의 틀을 마련했다.
- 낙동강 동쪽의 진한 지역 대부분을 차지했다.
- 대군장을 뜻하는 '마립간' 칭호를 사용했다.
- 김씨가 왕위를 독점적으로 세습했다. (내물왕 이전에는 박, 석, 김 3성이 돌아가며 왕위를 차지했다.)
- 고구려의 도움으로 왜의 침입을 물리쳤다. (호우명 그릇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
→ 고구려의 간섭도 있었다.

2) 눌지왕(417~458)
나제 동맹을 맺어 고구려의 간섭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3. 발전
1) 지증왕(500~514)
- 나라 이름을 '신라'로 바꾸고, 중국식 '왕' 칭호를 사용했다.
- 중국식으로 지방 제도를 정비하여 지방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했다.
- 소를 농사에 이용하는 우경을 실시했다.
→ 농업 생산력이 증대됐다.
- 경상도 북부 지방으로 진출해우산국(울릉도)을 정복했다.
2) 법흥왕(514~540)
- 율령 반포, 관리의 등급을 17등급으로 정비했다.
- 병부를 설치하여 군사 지휘권을 장악했다.
- 정치를 담당하는 상대등을 설치했다. (상대등은 귀족 회의인 화백 회의를 주관했다.)
- 이차돈의 순교로 불교를 공인했다.
→ 백성의 정신적 통일 추구
- 김해의 금관가야를 병합하여 낙동강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3) 진흥왕(540~576)
- 황룡사를 건립해 국가 통합과 발전을 기원했다.
- 화랑도를 국가적 조직으로 개편해 인재 양성했다.
-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대가야를 정복했다.
- 함흥평야까지 진출했다.
→ 진흥왕은 영토 확장을 기념하고자 단양 적성비와 4개의 순수비를 세웠다.

<< Ⅳ. 가야 >>
1. 건국
- 낙동강 하류에 있던 변한의 여러 소국이 철기 문화를 바탕으로 가야 연맹을 형성했다.
- 김수로왕이 세운 금관가야가 전기 가야 연맹을 주도했다.
2. 금관가야
1) 농업 발달
- 농사에 유리한 지형이다.
- 철제 농기구를 사용해 벼농사가 발달했다.
2) 해상 활동
- 지리적 이점을 이용해 중국의 군현, 왜와 활발한 대외 교류를 전개했다.
3) 철 생산
- 질 좋은 철이 많이 생산되어 중국 군현과 왜에 수출했다.
- 철로 덩이쇠를 만들어 화폐처럼 사용했다.
4) 쇠퇴
- 낙동강 동쪽으로 세력을 확대하려 했으나 신라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 왜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신라를 견제했다.
- 신라에 침입한 왜를 물리치려고 온 고구려의 공격으로 세력이 약화됐다.

3. 대가야
1) 발전
경상도 내륙에 있어 고구려의 침략을 피했다.
→ 후기 가야 연맹을 주도했다.
2) 영토 확대
5세기 후반 소백산맥을 넘어 전라북도의 일부 지역을 잠시 점령했다.
3) 외교 활동
중국의 남조에 사신을 보내 교류했다.
4) 쇠퇴
6세기 후반 백제와 신라의 압박을 받으며 세력이 약화됐다.
4. 멸망
1) 금관가야
신라 법흥왕에 멸망했다.(532)
2) 대가야
신라 진흥왕에 멸망했다.(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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