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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4.5.6급)

[한능검 기본] 4 삼국과 가야의 사회와 문화

by tory_write 2021. 10. 12.

<< Ⅰ. 삼국 시대 사회 모습 >>

 

1. 삼국 시대 각 신분의 생활 모습

 

1) 귀족

- 연맹 왕국의 부족장들이 중앙 관리편입되면서 형성되었다.

- 귀족 회의를 통해 정치 참여했고 지위세습했다.
사회·경제적으로 특권을 누렸다.

** 귀족회의 **
고구려: 제가회의
백제: 정사암 회의
신라: 화백 회의

- 녹읍과 식읍 등의 토지소유했다.
- 기와집에서 생활하며 비단옷금은으로 치장했다.

2) 평민

- 자유민이나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못했다.
고구려진대법을 실시했다.
** 진대법: 고국천왕 때 실시, 봄에 곡식 빌려주고, 가을에 갚게한 빈민 구제 제도.

- 대부분 농업에 종사했고, 국가나 귀족에 세금(조세, 역, 공납)을 납부했다.

** 조세: 재산에 따라 곡식이나 옷감을 바치는 것.
** : 15세 이상의 남자가 국가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
** 공물: 해당 지역의 특산물을 바치는 것.

3) 천민

- 대다수는 노비재산(물)으로 취급했다.
상속, 매매, 증여의 대상이었다.

- 주인과 함께 거주하며 시중을 들거나 주인과 떨어져 살며 주인토지경작했다.

- 전쟁 포로, 죄인 또는 빚을 진 사람들이 노비가 되는 경우가 많았다.



2. 삼국의 신분 제도

1) 고구려

- 지배층: 왕족인 고씨와 5부 출신 귀족
- 피지배층: 평민노비

[사진 1] 고구려 귀족

 

2) 백제

- 왕족인 부여씨와 8성 귀족, 평민노비가 존재했다.

3) 신라

- 엄격한 신분제인 골품제를 시행하여 지배층권한제한했다.

 

[사진 2] 신라 골품제

 

3. 삼국의 법과 풍습

지배층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해 매우 엄격한 법률을 제정했다.

1) 고구려

- 반역자·전쟁에서 항복한 자사형에 처했다.
- 도둑질한 자벌금12배 물렸다.
- 형사취수제: 형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받아들여 함께 생활했다.

2) 백제

- 언어, 풍습고구려비슷했다.
- 도둑질을 하면 2배 배상해야 했다.

3) 신라

- 화백회의: 귀족들이 모여 국가중요한 일만장일치로 결정했다.
- 화랑도: 진흥왕국가 조직으로 개편했다.
신라의 영토 확장 과정에서 크게 활약했다.

**화랑도: 청소년 수련 단체로 원광의 세속 5계를 행동 규범으로 삼았다.

[사진 3] 신라 화백회의, 만장일치제



[사진 4] 신라 화랑도

 

4. 삼국의 경제생활

1) 농업

- 철제 농기구를 사용하여 농업 생산량증가했다.
- 우경을 실시했다.


2) 상업

- 신라는 금성(경주)에 동시가 열리고 동시전을 설치했다.

**동시전: 금성에 세워졌던 상설 시장 중 동쪽 시장인 동시를 관리하는 관청으로 지증왕 때 설치됐다.



<< . 삼국 시대 종교와 학문 >>

 

1. 불교의 발달

1) 불교의 수용

- 삼국이 중앙 집권 국가기틀을 다질 무렵 수용
- 고구려: 소수림왕 중국 전진 통해 수용(372)
- 백제: 침류왕중국 동진을 통해 수용(384)
- 신라: 5세기 고구려로부터 수용, 법흥왕 때 공인(527)


2) 삼국 시대 불교의 특징

- 국가의 평안과 번영을 기원하는 호국적 성격이었다.
- 큰 규모의 사찰을 건축했다
신라의 황룡사, 백제의 미륵사

- 불교가 일반 백성에게까지 널리 퍼지지는 못했다.
왕실귀족 중심으로 발달했다.

 

3) 삼국 불교 문화 유산

: 익산 미륵사지 석탑,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

[사진 5] 익산 미륵사지 석탑 (백제)



[사진 6] 부여 정림사지 오층 석탑 (백제)

 

[사진 7] 경주 분황사 모전 석탑(신라)




불상: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 삼존상, 금동 미륵보살 반가 사유상

[사진 8] 고구려, 금동 연가 7년명 여래 입상



[사진 9] 백제, 서산 마애여래 삼존불



[사진 10] 금동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2. 도교의 수용

1) 전래

- 산천 숭배불로장생을 추구하는 신선 사상과 결합하여 유행했다.
- 고구려 연개소문이 불교 세력을 억압하고자 도교장려했다.

 

2) 관련 문화유산

- 고구려: 고분 벽화의 신선과 사신도 그림

[사진 11] 고구려, 사신도



- 백제: 산수무늬 별돌, 백제 금동 대향로

[사진 12] 백제, 금동대향로



3. 유학의 수용

한자의 보급과 함께 전래되었다.

1) 고구려

- 수도에 태학설치하고 귀족 자제에게 유학을 교육했다.
- 지방에 경당을 두어 학문과 무술 교육을 했다.

 

2) 백제

- 오경박사를 두어 유학을 가르쳤다.
**오경박사: 백제에서 5개 유교 경전잘 아는 사람에게 주는 관직이다.

 

3) 신라

- 진흥왕 순수비유학 경전의 내용을 인용했다.
- 임신서기석을 통해 유교 경전공부하였음을 알 수 있다.
** 임신서기: 신라의 두 사람이 유교 경전을 3년 동안 공부할 것을 맹세한 내용을 담은 비석

 

[사진 13] 신라, 임신서기석



4. 역사책의 편찬

1) 배경

- 학문발달하고 중앙 집권 체제안정되면서 편찬됐다.

2) 삼국의 역사책

- 고구려: 영양왕 때 이문진이 <신집> 5권을 편찬.
- 백제: 근초고왕 대 박사 고흥이 <서기>를 편찬.
- 신라: 진흥왕 때 거칠부가 <국사>를 편찬.



<< Ⅲ. 삼국 시대 고분과 고분 벽화 >>

 

1. 고구려

1) 초기

- 돌무지무덤(만주 지안 일대)을 제작했다.
점차 굴식 돌방무덤을 제작했다.

2) 굴식 돌방무덤

- 내부에 다양한 벽화를 제작했다.
초기에는 생활 모습을 주로 그렸고, 뒤에는 사신도를 그렸다.


2. 백제

1) 초기

- 고구려의 영향을 받아 돌무지무덤(서울 석촌동 고분) 제작했다.

2) 변화

- 굴식 돌방무덤,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아 벽돌무덤(무령왕릉)을 제작했다.
** 무령왕릉: 삼국 시대 고분 중 무덤 주인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고분이다.

[사진 14] 무령왕릉 입구

 

[사진 15] 무령왕릉 내부

 

3. 신라

1) 초기

- 거대한 돌무지덧널무덤을 제작했다.
점차 굴식 돌방무덤을 제작했다.


2) 대표 고분

- 천마총 천마도가 출토됐다.

[사진 16] 천마총

 

[사진 17] 천마도



4. 가야

- 구덩이식 돌덧널무덤을 만들고 철제 무기갑옷, 토기 등을 매장했다. 점차 굴식돌방무덤이 제작됐다.

- 삼국의 무덤과 달리 산 능선에 위치했다.

 



<< . 삼국 시대 대외 교류 >>

 

1. 중국 및 서역과의 교류

1) 중국

- 음악, 건축, 고분 양식영향을 받았다.

 

2) 서역

- 고구려: 우주베키스탄 궁전 벽화고구려 사신 모습을 발견했다.
- 신라: 고분에서 서역 금제 장식 보검, 유리그릇 등이 출토됐다.




2. 일본과 교류

 

1) 고구려

- 혜자: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되었다.
- 담징: 종이 먹, 벼루 제작술을 전파했다.



2) 백제

- 삼국 중 가장 활발하게 교류했다.
- 왕인과 아직기: 논어천자문을 전해줬다.
- 노리사치계: 성왕불상불경을 전파했다.



3) 신라

- 배 만드는 기술제방 쌓는 기술을 전했다.


4) 가야

- 철기가 전해져 국가 성장도움을 줬다.
- 가야 토기가 전해져 스에키 토기에 영향을 줬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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