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남북국 시대의 사회와 경제 >>
1. 통일 신라의 사회와 경제
1) 사회
- 귀족은 금입택이라 불리는 집을 소유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다.
2) 토지 제도
- 통일 후 신문왕 때, 관료전 지급, 녹읍을 폐지.
- 경덕왕 때, 다시 녹읍을 부활시켰다.
3) 민정 문서
- 촌락의 인구수, 토지 면적, 소와 말의 수 등을 조사했다.
2. 발해의 사회와 경제
1) 사회
- 지배층의 대부분은 고구려 유민이었다.
- 피지배층은 말갈인이 다수 차지했다.
2) 경제
- 농업은 밭농사가 중심이었으나 일부 지역에서는 벼농사도 지었다.
3. 대외 교류
1) 통일 신라
- 당: 외교 사절, 유학생, 승려 등이 자주 왕래했다.
신라방(신라인 거주지), 신라소(감독 관청),
신라관(숙소)가 형성됐다.
- 일본: 활발하게 교류했다.
- 울산항(국제무역항)에 이슬람 상인이 왕래했다.
- 장보고: 청해진을 설치하고 황해와 남해의 해상 무역권을 주도했다.
2) 발해
- 교역로로 발해 5도(신라도, 일본도, 조공도, 영주도, 거란도)를 설치했다.
- 당: 육로와 해로를 이용하여 교류했다.
발해관을 설치했다.
** 발해관: 산둥반도에 설치된 발해인의 숙소였다.
- 일본: 초기에는 당과 신라를 견제할 목적이었다.
점차 경제·문화적 목적으로 교류했다.
<< Ⅱ. 남북국 시대 시대의 문화 >>
1. 통일 신라의 문화
1) 유학의 보급
- 신문왕: 국학을 설치하여 유학 교육을 강화했다.
- 원성왕: 독서삼품과를 실시하여 유교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등용했다.
**독서삼품과: 국학 학생들의 유교 경전 이해 능력을 시험하여 등급을 나누었다.
- 대표 인물: 강수(외교 문서), 설총(이두), 김대문(<화랑세기> 저술), 최치원(당의 빈공과 합격)
**빈공과: 당이 외국인을 위해 실시한 과거 시험으로 신라와 발해의 인재들이 이 시험에 합격하였다.
2) 불교 사상의 대중화
- 원효: 일심 사상(모든 것이 마음에서 나온다)과 아미타 신앙을 전파했다.
**아미타 신앙: 누구든 '나무아미타불'을 외면 극락 세계에 갈 수 있다는 신앙
- 의상: 화엄 사상('하나가 전체요, 전체가 하나다')과 관음 신앙을 전파했다.
- 혜초: 인도를 방문하고 <왕오천축국전> 저술.
**왕오천축국전: 혜초가 인도와 서역을 돌아보고 쓴 기행문. 8세기 인도의 풍속과 문화를 알 수 있는 자료다. 이 기행문은 중국의 둔황 석굴에서 발견되어 현재는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 선종의 유행: 신라 말에 유행했다. 호족의 후원으로 지방 여러 곳에 사원을 건립했다.
**선종: 기존에 발달한 교종은 경전을 중심으로 불교 교리를 깨우치는 것을 중시했다. 이에 반해 선종은 수행을 통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중시했다.
3) 불교 예술
- 불국사, 석굴암, 성덕 대왕 신종, <무구정광대다리니경>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불국사 삼층 석탑에서 발견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본이다.
2. 발해의 문화
고구려 문화에 바탕을 두고 당과 말갈의 문화를 흡수했다.
1) 유학의 발달
- 주자감을 설치하여 유학을 교육했다.
- 당의 빈공과에 합격생을 배출했다.
2) 고분
- 정혜 공주 묘(굴식 돌방무덤, 모줄임천장 구조)
- 정효 공주 묘
**정효 공주 묘: 당의 영향을 받아 벽돌무덤으로 만들어졌고, 당 양식의 벽화가 그려졌다.
3) 불교 예술
- 연꽃무늬 기와, 석등, 불상 등을 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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