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후삼국의 성립과 고려의 건국 >>
1. 후삼국의 성립
1) 호족의 등장
-신라 말 귀족들의 왕위 다툼으로 중앙 정치의 혼란이 발생했다.
- 지방에서 독자적으로 군사를 보유하며 세력을 키운 호족이 등장했다.
- 호족은 지방에서 스스로 성주 또는 장군이라 칭하며 자기 지역을 지배했다.
2) 후백제 건국
- 견훤이 완산주(전주)를 도읍으로 심고 후백제를 건국했다.(900)
- 전라도와 충정도 일대, 경상도 일부를 차지하며 신라를 위협했다.
3) 후고구려 건국
- 궁예가 송악(개성)을 도읍으로 삼고 후고구려를 건국했다.(901)
- 경기도, 황해도, 충청도, 강원도 일대를 차지했다.
- 나라의 이름을 마진으로 바꿨다가 철원으로 도읍을 옮긴 후 다시 '태봉'으로 바꿨다.
2. 고려의 건국
1) 왕건
- 송악 출신으로 궁예의 신하가 되어 후고구려 건국을 도왔다.
**왕건: 해상 활동으로 세력을 키운 호족 출신이다.
2) 고려 건국(918)
- 궁예가 나라를 난폭하게 다스리자 호족들이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을 왕으로 세웠다. → 왕건은 나라 이름을 고려라 하고, 다음 해 도읍을 송악으로 다시 옮겼다.(919)
<< Ⅱ. 고려의 후삼국 통일 >>
1. 고려의 후삼국 통일 과정
1) 고창(안동) 전투
- 고려군이 후백제군을 격파해 유리한 위치를 차지했다.
2) 후백제의 내분
- 견훤이 아들 신검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고려 귀순했다.
3) 신라 멸망(935)
- 신라 경순왕이 스스로 고려에 나라를 넘겼다.
4) 후삼국 통일(936)
- 고려가 일리천(구미) 전투에서 승리했다.
→ 후백제가 항복했다
2. 후삼국 통일의 의의
1) 민족의 재통일
- 옛 고구려, 신라, 백제뿐만 아니라 발해 유민도 포용했다.
2) 정치 참여 세력 확대
- 지방 호족 세력과 새로운 지식인 계층까지 참여.
** 새로운 지식인 계층: 신라의 진골 귀족과 6두품 출신 유학자들도 지배층이 되었다.
3) 민족 문화 발전이 토대 마련
- 유교, 불교, 도교, 풍수지리설 등의 사상을 비롯하여 옛 삼국의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여 새로운 민족 문화 발전의 토대를 마련했다.
<< Ⅲ. 나라 기틀 다지기 위한 노력 >>
1. 태조의 정책
1) 호족 통합
- 지방의 유력한 호족과 혼인 관계를 맺고, 왕 씨 성을 내리며 관직과 토지를 지급했다.
→ 호족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노력.
- 각 지역의 호족 세력을 견제하고자 사심관 제도와 기인 제도를 활용했다.
**사심관 제도: 호족에게 사심관의 직책을 주어 자신의 출신 지역을 통제하게 한 제도
**기인 제도: 호족의 자제들을 볼모로 삼아 개경에 머물게 한 제도
2) 민족 통합
- 후백제, 신라 출신도 지배층이 될 수 있게 하고, 발해 유민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3) 민생 안정
- 세금을 줄여 백성의 부담을 덜어 주고, 빈민을 구제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4) 북진 정책
- 고구려 계승을 내세우며 서경(평양)을 중시했다.
- 고구려 옛 영토를 회복하고자 북쪽으로 영토를 확장했다.
2. 광종의 개혁 정치
1) 노비 안검 법 실시(956)
- 호족들이 불법으로 차지한 노비를 양인으로 해방시켰다.
- 공신, 호족의 경제적·군사적 기반을 약화시켰다.
2) 과거제 실시(958)
- 쌍기의 건의로 나라에서 시험을 치러 능력 있는 관리를 선발했다.
- 유학을 익힌 새로운 인재를 등용했다. → 신구 세력 교체를 도모했다.
3) 공복 제정(960)
- 관리들의 등급에 따라 입는 옷을 구분하여 위계질서를 확립했다.
4) 공신 숙청
- 개혁에 반발하는 호족과 공신을 제거하여 왕권을 강화했다.
5) 칭제 건원
- 황제라 칭하고 '광덕', '준풍' 등의 연호를 사용.
3. 성종의 유교 정치
1) 최승로의 시무 28조 수용
- 유교 이념을 확립했다.
2) 중앙 정치 조직 정비
- 당의 3성 6부제를 받아들여 2성 6부 체제로 중앙 관제를 마련했다.
3) 지방 제도 정비
- 지방에 12목을 설치하고 지방관을 파견했다.
4) 유학 교육
- 국자감을 정비하여 교육을 장려했다.
<< Ⅳ. 통치 체제의 정비 >>
1. 중앙 정치 제도
1) 2성 6부
- 성종 때 중앙 정치 제도를 정비하여 운영했다.
- 중서 문하성: 국가 정책을 심의하여 결정했다.
→ 최고 기구로서 그 장관인 문하시중이 국정 총괄.
- 상서성: 6부를 두고 정책 집행을 담당했다.
- 6부: 일반 행정 업무를 맡아 집행했다.
→ 이부, 병부, 호부, 형부, 예부, 공부
2) 중추원
- 왕명을 전달했다.
- 군사 기밀과 숙위를 담당했다.
3) 어사대
- 관리의 비리를 감찰하고 풍기를 단속했다.
4) 삼사
- 국가 재정의 출납과 회계를 담당했다.
5) 도병마사
- 국방과 군사 문제를 논의했다.
6) 식목도감
- 제도와 각종 시행 규칙을 제정했다.
**도병마사, 식목도감: 고려의 독특한 회의 기구로 중서 문하성과 중추원 고위 관료들로 구성되어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했다.
7) 대간
- 어사대 관원 + 중서 문하성의 낭사로 구성되었다.
- 간쟁·봉박·서경권을 행사했다.
**간쟁: 왕의 정치적 잘못을 논하는 것.
**봉박: 잘못된 왕명을 시행하지 않고 되돌려 보내는 것.
**서경: 관리의 임명과 법령 개정 등에 동의하는 것.
2. 지방 행정 제도
1) 특징
- 전국을 5도, 양계, 경기로 나누어 통치했다.
2) 5도
- 일반 행정 구역, 도호부, 군, 현을 설치했다.
→ 안찰사를 파견했다.
3) 양계(북계와 동계)
- 국경 지역에 설치한 군사 행정 구역이다.
→ 병마사를 파견했다.
4) 경기
- 수도인 개경의 주변 지역이다.
5) 3경
- 서역(평양), 동경(경주), 남경(한양)
6) 특징
- 중앙에서 지방관이 파견된 주현보다 파견되지 않은 속현이 더 많았다.
→ 주현의 수 < 속현의 수
- 특수 행정 구역인 향·부곡·소는 주현을 통하여 중앙 정부의 통제를 받았다.
- 조세나 공물의 징수 등 지방 행정 실무는 그 지방의 향리가 담당했다.
**향리: 호족 중 세력이 작은 사람은 지방에 남아 향리가 되어 지방관을 도왔다. 직책을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었고, 상층 향리는 과거 시험을 통해 중앙 관료로 진출할 수도 있었다.
3. 군사 제도
1) 중앙군
- 2군: 응양군과 용호군으로 편제됐다.
왕과 궁궐을 호위하는 임무다.
- 6위: 수도와 국경 지역의 방어 및 치안을 담당.
**중앙군: 대부분 직업 군인으로 편성되었으며, 군적에 올라 군인전을 지급받고 그 토지와 지위는 자손에게 세습되었다.
2) 지방군
- 주현군: 도의 양민들로 편성돼있었다.
→ 지역의 치안 유지 및 국가 공사에 동원됐다.
- 주진군: 양계의 양민들로 편성됐다.
→ 양계에 주둔하여 국경을 방어했다.
4. 교육 제도
1) 중앙
- 성종 때 개경에 최고 교육 기관인 국자감을 설치.
**국자감: 고려 후기에 성균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시험으로 학생을 선발했다.
- 문헌공도 등 사립 교육 기관인 사학 12도를 융성.
2) 지방
- 경학박사, 의학박사 등을 파견했다.
- 향교를 세워 유학 교육을 장려했다.
5. 관리 등용 제도
1) 과거
- 시험을 통해 관리를 선발했다.
- 응시 자격: 법적으로 양인 이상이면 응시 가능.
- 구분: 무과는 거의 시행하지 않았다.
→ 문과: 제술과(문학), 명경과(유교 경전 이해)
→ 잡과: 법률, 회계, 의학, 지리 등 기술 시험
→ 승과: 승려를 대상으로 실시
2) 음서
- 과거를 거치지 않고 관리로 등용하는 제도였다.
- 자격: 왕족, 공신의 후손, 5품 이상 관료의 자손 등
- 특징: 고려 관료 체제의 귀족적 성격
**음서: 고려시대에는 부계 후손 외에도 사위나 외손자뿐만 아니라 수양자 등도 음서의 혜택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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