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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능력검정시험/기본(4.5.6급)

[한능검 기본] 9 고려의 대외 관계

by tory_write 2021. 10. 18.

<< Ⅰ. 거란의 침입과 격퇴 >>

1. 고려 전기 동아시아의 국제 정세

1) 거란

10세기 초 동아시아 북쪽 초원 지역에서 세력 확장했다.

 

2) 송

- 5대 10국 혼란기를 거쳐 중국 재통일했다.

 

3) 고려

- 외교 관계를 맺고 거란 견제했다.

 

4) 여진

- 12세기 무렵 세력을 키워 동아시아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했다.

 

[사진 1] 고려와 동아시아국의 대외 관계

 

 

 

2. 거란의 침입

1) 거란과의 관계

- 건국 초부터 북진 정책을 추진했다.

-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견제했다.

 

 

2) 거란의 1차 침입(993)

- 거란이 중국 침략을 위해 고려에 송 외교 관계 단절요구했다.

 

- 고려의 친송 외교구실로 거란 장수 소손녕이 80만 대을 이끌고 침입했다.

 

- 서희는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송과 관계끊기약속했다. 거란을 물러나게 하고 강동 6주 차지했다.

 

- 압록강까지 영토확대했다.

 

 

3) 거란의 2차 침입(1010)

- 고려가 송과 관계를 끊지 않자 거란이 정변구실로 다시 쳐들어와 개경됐다.

양규 등의 활약으로 격퇴했다.

 

 

4) 거란의 3차 침입(1018)

- 현종이 거란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자 강동 6주 반환요구하며 침입했다.

강감찬이 귀주에서 거란의 대군을 격파했다.(귀주 대첩, 1019)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이 끝난 뒤 개경나성을 쌓고 국경 지역에는 천리장성을 쌓아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사진 2] 거란의 3차 침입

 

 

<< . 여진의 위협 극복 >>

1. 여진의 위협

1) 고려 초기

- 여진족은 고려를 부모의 나라라 부르며 섬겼다.

 

2) 12세기

- 여진족 통합되면서 세력이 강성해져 고려와 국경에서 자주 충돌했다.

 

 

 

2. 윤관의 활약

1) 별무반 조직

- 천리장성을 넘어 여진 정벌했다.

 

**별무반: 여진의 기병에 대항하기 위해 윤관의 건의로 편성된 새로운 부대이다. 기병 부대인 신기군을 중심으로 보병인 신보군과 승려로 구성된 항마군 등으로 구성되었다.

 

[사진 3] 별무반의 구성

 

 

2) 동북 9성 개척(1107)

- 여진족의 근거지인 동북 지방에 9개의 성을 쌓고 고려의 영토로 삼았다.

 

- 여진족의 반환 요구방어의 어려움으로 여진족에 9성 반환했다.

 

[사진 4] 동북 9성의 위치

 

 

 

3. 여진과의 관계

1) 금 건국(1115)

- 여진족이 세력을 키워 건국했다.

- 거란(요)을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 을 남쪽으로 몰아내고 중국 화북 지방차지했다.

 

 

2) 금과의 관계

- 강력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이 고려에 군신 관계요구했다.

 

- 당시 정권을 잡고 있던 이자겸이 전쟁을 피하기 위해 금의 요구수용했다.

 

 

<< Ⅲ. 고려의 대외 교류 >>

1. 특징

- 개방적이고 무역장려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주변 나라들과 활발하게 교류했다.

 

 

2. 고려의 무역

1) 벽란도

- 위치: 고려 수도 개경 근처 예성강 하구

- 번성: 중국, 일본, 아라비아 상인들까지 왕래하는 국제 무역항

 

 

2) 송과의 교류

- 발달된 송 문물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 송은 고려를 통해 안정적 국제 관계유지했다.

- 송에 종이, 먹, 인삼, 나전 칠기, 화문석 등을 수출했고, 약재, 비단, 서적 등을 수입했다.

 

 

3) 거란과 여진

- 농기구곡식 등을 수출했고, 모피 등을 수입했다. 

 

 

4) 일본

- 인삼, 곡식 등을 수출하고 수은유황 등을 수입했다.

 

 

5) 아라비아와의 교류

- 고려에 들어와 교역했다.

- 아라비아 상인들에 의해 우리나라가 '코리아'로 서방 세계 알려졌다. 

 

 

[사진 5] 고려의 무역

 

 

 

<< . 고려의 대몽 항쟁 >>

1. 몽골의 성장

1) 칭기즈 칸

- 13세기 몽골 고원에서 유목 생활을 하던 몽골족통일했다.

 

2) 대제국 건설

- 기마병을 앞세운 막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대제국설했다.

 

 

 

2. 고려와 몽골의 관계

1) 몽골군에 쫓겨 고려에 침략한 거란족연합하여 격퇴했다. → 우호 관계가 형성됐다.

 

2) 몽골은 고려를 복속국으로 취급하며 막대한 공물요구했다.

 

 

3. 고려와 몽골의 전쟁(1234~1270)

1) 몽골의 고려 침략

- 몽골 사신피살구실로 몽골군이 고려를 침략했다.(1231)

박서가 이끄는 고려군이 귀주성에서 몽골군을 물리치고 성을 방어했다.

→ 최씨 정권은 개경 포위되자 서둘러 몽골과 강화 체결했다.

→ 몽골군이 점령 지역개경다루가치를 두고 철수했다.

**다루가치: 몽골어로 점령지에 파견한 군대 및 관청의 장관을 뜻한다. 파견된 지역행정감독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2) 강화도 천도

- 최씨 무신 정권은 몽골과 맞서 싸우고자 수도강화도옮겼다.(1232) → 팔만대장경 제작하여 몽골 격퇴를 염원했다. 

 

[사진 6] 강화 천도

 

 

3) 김윤후의 활약

- 처인성 전투(1232): 몽골의 2차 침입 때 김윤후가 이끄는 부곡민들이 처인성에서 몽골군의 총사령관 살리타사살하며 승리했다.

 

- 충주성 전투(1253): 몽골의 5차 침입 때 김윤후가 노비 문서를 불태우며 백성들의 사기를 높여 몽골군을 격퇴하고 성을 방어했다. 

 

4) 고려의 피해

- 몽골과의 오랜 전쟁으로 국토황폐화되고, 백성 고통증가했다.

 

- 고려의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쳤으며 몽골에 포로끌려갔다.

 

- 초조대장경, 경주 황룡사 구층 목탑이 불에 타는 등 귀중한 문화재파괴했다.

 

 

[사진 7] 몽골 침략로 및 고려의 피해

 

 

 

4. 몽골과의 강화

1) 최씨 무신 정권의 붕괴(1258)

- 최씨 무신 정권은 백성의 어려움을 돌보지 않고 오히려 더 많은 세금을 거두었다.

 

- 최씨 무신 정권에 대한 백성의 원성이 높아지고 지배층 내부의 불만증가했다.

 

- 항전을 주도하던 최씨 무신 정권이 무너지고, 몽골과강화추진했다.

 

 

2) 개경 환도(1270)

- 고려 정부는 몽골과 강화를 맺고 개경 환도를 결정했다.

 

 

 

5. 삼별초의 항쟁

1) 삼별초

- 최씨 무신 정권군사 기반이었다.

 

 

2) 항쟁

- 개경 환도거부하고 몽골과 끝까지 맞서 싸우기로 결정했다.

 

- 근거지를 진도(배중손), 제주도(김통정)로 옮겨 가며 항전했다.

 

 

3) 진입

- 고려와 몽골의 연합군에 의해 진압됐다.(1273)

 

[사진 8] 몽골 침략 및 삼별초 투쟁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어린이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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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지식백과, 두산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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