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고려의 사회 모습 >>
1. 사회 정책
1) 농민 지원 제도
- 농사일이 바쁜 시기에 농민의 동원 금지, 자연재해로 피해를 입게 되면 세금 감면을 해주었다.
2) 의창 설치
- 백성에게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추수한 다음에 갚도록 했다.
3) 동서 대비원
- 국립 의료 기관으로 가난한 사람의 진료 및 구휼을 담당했다.
2. 가족 제도
1) 가족 구성
-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소가족 중심이었다.
2) 혼인 풍속
- 대체로 일부일처제였다.
- 이혼과 재혼이 가능했고, 재혼한 여성의 자녀도 차별 없이 사회 활동이 가능했다.
- 사위가 처가살이를 하는 경우가 많았고, 처가의 호적에 오르기도 했다.
- 고려 후기 공녀가 되지 않기 위해 일찍 결혼하는 풍속이 유행했다.
3) 상속
- 자녀 균분 상속이 원칙이었다.
- 아들과 딸의 구분 없이 부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4) 가족 내 여성의 지위
- 일상생활에서는 남성과 거의 대등한 위치였다.
- 호적에 남녀 구분 없이 태어난 순서대로 기록됐다.
- 여성이 한 집안의 대표로 가족을 부양하는 호주가 가능했다.
- 사위나 외손자도 음서의 혜택을 적용받았다.
**고려시대 여성: 관직에 오르지 못하는 등 사회 활동에는 제한이 있었다.
<< Ⅱ. 고려의 사상 >>
1. 불교의 발달
1) 특징
- 백성부터 왕실까지 널리 믿었으며 국가의 보호 아래 크게 발전했다.
- 과거에 승과를 설치했다.
- 국사와 왕사 제도가 있었다.
**왕사: 임금의 스승 역할을 하였던 고승
- 연등회와 팔관회 등을 성대하게 개최했다.
** 연등회: 등불을 밝혀 부처에게 복을 비는 불교 행사. 태조의 훈요 10조에 따라 고려에서 국가적 행사로 열렸다.
2) 주요 인물
의천: 해동 천태종을 창시했다.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통합을 주장했다. (교관겸수)
지눌: 수선사(송광사)를 중심으로 불교 개혁 운동을 전개했다.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함께 포용할 것을 강조했다. (돈오점수, 정혜쌍수)
3) 불교계의 변화
- 고려 후기 신진 사대부가 불교계의 폐단을 지적하면서 불교를 배척했다.
2. 유학의 발달
1) 과거제 실시
- 광종이 유학을 공부한 인재를 과거를 통해 관료로 등용했다.
2) 유교 정치 이념 정립
- 성종이 최승로의 시무 28조를 수용했다.
- 이로 인해 유교 교육이 확대됐다.
- 유교 경전 연구 및 행사가 활성화됐다.
3) 유학 교육 기관의 정비와 발전
- 사학 교육의 유행: 최충의 9재 학당(문헌공도)을 비롯한 사학 12도가 발전했다.
- 관학 진흥책: 국자감 등의 관학 교육을 활성화하기 위해 정책을 추진했다. → 전문 강좌인 7재를 설치했고 장학 재단인 양현고를 설치했다.
4) 성리학의 수용
- 인간의 심성과 우주의 원리를 철학적으로 탐구하는 신유학이다.
- 안향: 충렬왕을 따라 원에 다녀와서 성리학을 고려에 소개했다.
**동방의 주자: 안향이 고려에 성리학을 소개하여 이 같은 칭호를 얻었다.
- 이제현: 충선왕이 설치한 만권당에서 원의 학자와 교류하며 성리학을 연구했다.
- 이색: 성균관 대사성이 되어 성리학을 가르쳐 많은 학자를 배출했다.
- 정몽주, 정도전 등 신진사대부: 성리학을 기초로 한 개혁을 주장했다.
3. 도교와 풍수지리설의 발달
1) 도교의 유행
- 왕실이 국가의 평안을 기원하며 하늘과 별에 제사를 지냈다.
2) 풍수지리설의 유행
- 도읍을 정하거나 궁궐, 사찰, 주택 등을 짓는 데 활용했다.
4. 역사책의 편찬
1) 특징
- 유학의 발달로 다양한 역사서를 편찬했다.
(국가 주도 편찬 → 개인 저술)
- 몽골의 침략을 겪으며 민족의 자긍심과 자주 의식을 높이려는 역사서가 등장했다.
2) <삼국사기>(김부식)
- 목적: 이자겸의 난과 묘청의 서경 천도 운동으로 떨어진 왕권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 특징: 기전체 형식 → 삼국 시대 ~ 통일 신라 왕들의 활동과 정치, 경제, 군사, 인물 등을 분야별로 서술했다.
- 신라를 정통 왕조로 보았기 때문에 신라에 대한 기록이 가장 많고 우호적이었다.
3) <동명왕편>(이규보)
- 고구려를 세운 주몽(동명성왕)의 업적을 시로 표현하여 민족의 자부심을 심어 주고자 서술했다.
4) <삼국유사>(일연)
- 단군왕검의 고조선 건국 이야기를 실어 민족의 긍지와 자주 의식을 밝혔다.
5) <제왕운기>(이승휴)
- 자주 의식을 바탕으로 단군 조선을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로 기록했다.
<< Ⅲ. 고려의 예술 >>
1. 고려청자
1) 특징
- 제작이 어려워 왕실과 귀족이 주로 사용했다.
2) 용도
- 사발, 접시, 연적, 병, 향료, 항아리 등 다양한 형태로 사용했다.
3) 상감법
- 12세기 중엽 독자적인 기법으로 제작했다.
- 연꽃, 모란, 봉황, 학, 구름 등 다양한 무늬를 화려하게 새겼다.
**상감법: 자기의 표면을 파고 다른 색의 흙을 메워 무늬를 만들어 구운 다음 유약을 발라 다시 굽는 방법
4) 지역
- 전라도 강진과 부안이 제작 지역으로 유명했다.
2. 불상
1) 쇠로 만든 철불 제작이 유행했다.
(하남 하사창동 철조 석가여래 좌상)
2) 지방 문화가 발달하여 투박하고 향토적인 거대한 석불이 활발하게 제작됐다.
(논산 관촉사 미륵보살 입상)
3. 석탑
1) 다각 다층탑
- 신라 양식을 계승하면서도 고려의 특징이 드러난다.(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 석탑, 개성 현화사 칠층 석탑 등)
2) 경천사지 십층 석탑
- 원의 영향을 받은 석탑이다.
4. 승탑
- 덕이 높은 승려의 사리를 봉안하고자 제작됐다. (여주 고달사지 승탑)
5. 공예
1) 목공예
- 옻칠한 바탕에 자개를 붙여 장식하는 나전 칠기가 발달했다.
2) 금속 공예
- 청동의 표면을 얇게 파낸 후 은실로 박아 꾸미는 은입사 기법이 발달했다.
6. 불화
1) 발달 배경
- 고려 후기 왕실과 권문세족의 요구에 따라 화려한 불화가 많이 제작됐다.
2) 특징
- 부처의 모습을 섬세한 선이나 아름다운 색채로 표현했다.
3) 종류
- 벽에 그리는 벽화, 천이나 종이에 그려서 벽에 거는 탱화가 있다.
4) 대표 작품
- <수월관음도> → 탁월한 구도와 화려하고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7. 건축
- 궁궐과 사원 중심 →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예산 수덕사 대응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기둥 가운데가 불룩한 배흘림기둥이 특징
<< Ⅳ. 과학 기술의 발달 >>
1. 인쇄술의 발달
1) 팔만대장경
-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아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됐다.
- 배경: 초조대장경이 몽골의 침입으로 소실됐다.
- 목적: 불교의 힘으로 몽골의 침입을 이겨 내고자 대장경을 제작했다.
- 제작: 십여 년간 목판 8만여 장에 불경을 새겨 팔만대장경이라고 부른다.
- 특징: 글자 모양과 보존 상태가 뛰어나 목판 인쇄술의 높은 수준을 보여 준다.
**대장경: 불교 경전을 집대성한 것이다. 불교 교리 체계 전반에 대한 이해와 정리가 선행되어야만 제작이 가능하다.
2) 금속 활자
- 목판에 비해 오래 보관할 수 있고, 활자를 조합해 여러 종류의 책 인쇄가 가능하다.
- <상정고금예문>: 1234년에 금속 활자로 인쇄하였다는 기록이 존재한다.
- <직지심체요절>: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인쇄됐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이다.
**직지심체요절: 독일에서 금속활자로 인쇄된 구텐베르크 성경보다 70년이나 앞섰다. 현재 프랑스 국립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2. 화약 제조 기술의 발달
1) 최무선
- 화약 제조법을 터득하여 화통도감을 설치했다.
2) 활약
- 화약과 화포를 제작하여 진포(금강 하구) 싸움에서 왜구를 크게 격퇴했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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