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Ⅰ. 근세 사회의 성립 >>
1. 조선의 건국
1) 배경
- 권문세족을 비판하고 사회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신진 사대부와 신흥 무인 세력이 협력했다.
2) 과정
- 위화도 회군(1388):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군대를 되돌려 정권을 잡았다.
- 과전법 실시(1391): 권문세족의 농장을 혁파하고, 신진 사대부의 경제 기반을 마련했다.
- 반대 세력 제거: 고려 왕조의 유지를 주장하는 정몽주 등을 제거했다.
- 조선 건국(1392): 이성계가 왕위에 올랐다.
2. 국가의 기틀 마련
1) 태조
- 국호를 '조선'으로 제정하고 한양으로 천도했다.
- 정도전의 활약: 초기 조선의 문물제도 정비에 기여했다.
- 재상 중심 정치를 주장했고, 성리학적 통치 이념을 확립했다.
2) 태종
- 국왕 중심의 정치 강화
- 6조 직계제 실시: 6조가 국왕에게 직접 업무를 보고하고 지시받아 업무를 수행한다.
- 사병 폐지: 국왕의 군사권을 강화했다.
- 국가 재정 기반 확충: 토지 조사와 호구 조사를 실시했다. 호패법을 실시했다.
3. 문물제도의 정비
1) 세종
- 왕권과 신권의 조화를 추구했다.
- 집현전 설치: 학문과 정책 연구 기관으로 운영했다.
- 의정부 서사제 실시: 6조의 업무를 의정부에서 먼저 심의한 후 왕에게 보고하는 체제, 인사와 군사 업무는 왕이 직접 처리했다.
- 삼강행실도 편찬: 유교 윤리를 백성에게 보급할 목적으로 편찬했다.
- 백성의 여론을 존중했고, 유교적 민본 사상 실현. → 왕도 정치를 추구했다.
**왕도정치: 왕이 높은 도덕성을 바탕으로 신하와 협력하여 백성을 바르게 다스리는 정치. 유교에서 이상적으로 여겼던 정치 형태.
2) 세조
- 6조 직계제를 부활시켰다.
- 집현전과 경연을 폐지했다.
- 종친을 등용했다. → 왕권을 강화했다.
**종친: 왕의 친족으로 촌수가 가까운 사람들을 말한다.
3) 성종
- 홍문관 설치: 집현전을 계승한 기구로 경연을 담당했다. 왕의 자문 기구이다.
- 경연 강화: 왕과 신하가 유교 경전과 역사를 공부하고 학문과 국가 정책을 논의했다.
- 경국대전 반포: 조선 왕조의 기본 법전 → 조선 왕조 통치 체제를 확립했다.
<< Ⅱ. 통치 체제의 정비 >>
1. 중앙 통치 체제
의정부과 6조를 중심으로 편제됐다.
1) 의정부
- 최고 관청, 재상 합의로 국정을 총괄했다.
2) 6조
- 왕의 명령을 집행하는 행정 기관이다.
3) 승정원
- 왕명 출납(국왕의 비서 기구) 기구이다.
4) 의금부
- 국가의 큰 죄인을 조사하고 처벌했다.
5) 사헌부
- 관리의 비리를 감찰했다.
6) 사간원
- 정치에 대한 잘잘못을 비판했다.(간쟁)
7) 홍문관
- 경연을 담당하고, 국왕의 자문 담당했다.
8) 기타
- 한성부(수도의 행정과 치안), 춘추관(역사 편찬), 성균관(최고 교육 기관)
2. 지방 행정 체제
1) 지방 행정 구역
- 전국을 8도로 구분 → 8도 아래에 고을 크기에 따라 부·목·군·현을 설치했다.
- 향·부곡·소의 특별 행정 구역은 일반 군현으로 승격됐다.
2) 지방관 파견
- 관찰사: 8도에 파견했고, 수령을 지휘 감독했다.
- 수령: 행정·사법·군사권을 보유했다. 대부분 군·현에 파견됐다.
3) 향리
- 지방 세력가에서 수령의 행정 실무를 보좌하는 역할로 축소됐다.
4) 유향소와 경재소
- 유향소(향청): 지방 양반(사족)으로 구성된 자치 기구다. 수령을 보좌하고 향리를 감찰, 풍속 교정 등의 역할을 담당했다.
→ 사족 중심의 향촌 질서를 강화했다.
- 경재소: 유향소 통제를 위해 한성에 설치했다. 유향소와 정부의 연락을 담당했다.
3. 군사 제도
1) 군역 제도
- 원칙: 16세 이상 60세 미만의 양인 남자가 군역을 부담했다. 현직 관료·학생·향리 등은 면제됐다.
- 편성: 직접 군역을 담당하는 정군과 정군의 비용을 부담하는 보인(봉족)이 있었다.
2) 군사 조직
- 중앙군: 5위 → 궁궐과 서울 수비
- 지방군: 육군(병영)과 수군(수영)으로 편성하고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를 파견했다. 잡색군을 설치했다.
**잡색군: 지역 수비를 보완하기 위해 서리, 신량역천, 공·사노비 등이 소속되어 유사시에 대비한 일종의 예비군이다.
3) 교통·통신 체제 정비
- 봉수제, 역참제, 조운제 → 국방과 중앙 집권이 목적이었다.
4. 교육 제도
1) 운영 목적
- 유교적 소양을 갖춘 관리를 양성했다.
2) 입학 자격
- 천민이 아니면 누구나 가능했다. → 실제로는 양반 자제 중심이었다.
3) 교육 기관
- 서당: <천자문>과 <소학> 등을 통해 한자, 초보적인 유학 지식 교육을 했다.
- 향교: 지방에 설치했다. <소학>과 <사서>를 중심으로 유교 경전을 교육했다.
- 4부 학당: 한성에 설치했다. 향교와 같은 것을 교육했다.
- 성균관: 최고 국립 교육 기관
5. 관리 선발 제도
1) 과거
- 응시 자격: 원칙적으로 천민을 제외하고 누구나 응시 가능했다.
- 실시 시기: 3년마다 실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 문과
소과 - 문과(대과)의 예비 시험 → 합격자는 성균관 입학, 문과(대과) 응시 가능했다.
문과(대과) - 문관을 뽑는 시험으로 가장 중시됐다. 주로 양반이 응시했다.
- 무과: 무관 선발, 상민도 응시 가능했다.
- 잡과: 기술관 선발, 주로 중인이 응시했다.
**잡과: 외국어 시험인 역과, 법률 시험인 율과, 의술 시험인 의과, 천문·지리 등에 관한 시험인 음양과 등이 있었다.
2) 음서
- 고려에 비해 대상이 축소됐다.
- 문과에 합격하지 않으면 고위 관직 승진이 어려웠다.
3) 천거
- 고위 관리의 추천으로 관직에 등용됐다.
- 주로 기존 관리를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 어린이백과(학습 용어 개념사전, 한국사 사전 1)
- e뮤지엄
- 두산백과
- 문화원형백과(조선시대 수영 복원)
- 한국 미의 재발견 과학문화
'한국사능력검정시험 > 기본(4.5.6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능검 기본] 14 조선 전기의 대외 관계와 양 난 (0) | 2021.10.24 |
---|---|
[한능검 기본] 13 사림의 성장과 붕당 정치의 성립 (0) | 2021.10.23 |
[한능검 기본] 11 고려의 사회와 문화 (0) | 2021.10.21 |
[한능검 기본] 10 원의 간섭과 새로운 세력의 등장 (0) | 2021.10.19 |
[한능검 기본] 9 고려의 대외 관계 (0) | 2021.10.18 |
댓글